2025학년도 봄학기 한국어학당 졸업식 축사
안녕하십니까?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김장환입니다.
오늘 제253회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올해는 연세대학교 개교 140주년이자, 연세 한국어학당 창립 6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10년이 지난, 그야말로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던 1960년에 단 두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제1회 졸업식을 시작으로 오늘 제253회 졸업식에 이르기까지 정규과정에서만 9,000명이 넘는 전 세계의 한국어 인재들이 연세 한국어학당을 거쳐 갔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작한 연세 한국어학당의 역사와 전통은 바로 대한민국 한국어 교육의 역사와 전통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그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소중한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분의 삶에서 매우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
흔히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매우 과학적인 원리로 만들어진 한글은 열흘 정도면 읽고 쓰기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반면에 또한 한국어는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말합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처럼 가장 높은 6급 과정을 공부하신 분이라면 잘 아실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인 저도 여전히 맞춤법이 헷갈리고 띄어쓰기를 틀립니다. 말의 장단도 골치 아픕니다. 방송국의 아나운서도 이것을 곧잘 틀립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높임말과 낮춤말, 정말 다양한 색깔과 맛 표현, 몸의 아픈 증상 표현 등등 수많은 벽에 부딪힙니다.
최근에는 케이팝, 케이드라마, 케이뷰티, 케이푸드, 케이스타일 등 케이 컬처의 열풍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학습 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에는 연세대 국문과 동문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작품의 번역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열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상적인 의사소통이야 AI와 같은 기계적인 자동 통번역이 이미 가능하게 되었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문학번역, 나아가 문화번역은 여전히 인간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는 어쩌면 상당히 오랜 미래까지 인간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23개국에서 오신 73명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모국어와 그동안 연세 한국어학당에서 갈고 닦은 한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어디에 계시든지 여러분의 뒤에는 연세 한국어학당이 있고, 또 그 뒤에는 진리와 자유의 전당인 연세대학교가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연세 한국어학당과 연세대학교는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희망찬 졸업에 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5월 20일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장
김장환
2025학년도 봄학기 한국어학당 졸업식 답사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원장님 이하 모든 선생님들, 사랑하는 친구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저는 2025년 봄 학기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 졸업생 대표 바트벌드 엔흐진입니다. 오늘 이 뜻깊은 자리에서 여러분을 대표해 인사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주신 모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모든 과제와 시험을 다 이겨 내고 이 자리에 계신 6급 친구들. 여러분 모두에게 큰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졸업을 맞이한 지금 이 순간, 저는 한 권의 책을 덮는 기분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언어 교재가 아닌 저의 성장이 담긴 기록이고 선생님들의 가르침과 친구들의 응원이 담긴 추억의 앨범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한번 배워볼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의 1년 반은 단순한 외국어 학습 기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단단하게 성장해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1급은 마치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겨울 같았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고 어려웠지만 한국어와 첫 인사를 나눴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소개를 했던 날에 멋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것이 맛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버려서 모두가 웃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 자신은 당황했지만 그 순간을 따뜻하게 웃어 주신 선생님과 반 친구들 덕분에 실수조차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2급은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봄 같았습니다. 더 많은 표현을 배워가며 한국 사회의 모습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3급은 뜨거운 여름이었습니다. 과제와 발표 속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제 안의 열정은 오히려 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4급은 풍요의 가을이었습니다. 말의 무게를 느끼고 한국어 속에 담긴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며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언어를 배우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본 시기였습니다.
5급은 긴긴 밤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세밀한 어휘, 복잡한 표현들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지만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6급. 새벽과 같았습니다. 단순히 언어를 배우는 단계를 넘어 한국어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였습니다. 우리는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며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말의 구조만이 아니라 말 뒤에 숨겨진 맥락과 감정을 읽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언어를 통해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가? 내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우리는 단순한 언어 학습자가 아닌 사고하고 표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 여정 속에서 길잡이가 되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저희들의 선생님들이십니다. 선생님들은 단순히 한국어를 가르쳐주신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문법을 설명해 주시는 그 손끝에, 발음을 바로잡아 주시던 그 눈빛에, 항상 저희를 향한 진심과 인내가 담겨 있었습니다. 실수할 때마다 괜찮다고 안심 시켜 주시고 작은 진보에도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습니다.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세심하게 고쳐 주시며 말보다 먼저 마음을 읽어 주셨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여정을 함께 걸어온 사랑하는 동기 여러분. 처음에는 어색한 인사로 시작했던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의 고민을 이해해주고 실수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교실에서 함께 했던 농담, 시험 전날 밤새도록 서로 도우며 정리했던 문법들, 마음이 지칠 때 건넸던 따뜻한 말 한마디.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우리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그 차이를 넘어서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 가겠지만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연세 대학교 한국어학당이라는 인연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우리들의 졸업 축하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앞날에 따뜻한 한국어의 빛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5 년 5월 20일
졸업생 대표
바트벌드 엔흐진 (Batbold Enkhjin)